씁쓸한 링크

용직이글 2008/08/04 12:20
어찌저찌 웹질을 하다 Null model이라는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이런 짜증나는 상황에 대한 글을 보았다. 그러니까 글이 짜증나는 게 아니라, 글에서 묘사한 상황이 짜증난다는 것이다.

문제의 글은 다음의 정말 어처구니없는 Ohmynews 기사에 대한 비평이다.

기사 여섯줄요약:

* 사회학 시간강사를 한다는 어떤 남자의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되었다.
* 병원에서는 골반이 작고 아이 머리가 커서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한다.
* 사회학자는 병원권력의 거짓말에 속지 않겠다며 거절한다.
* 아내가 40시간 진통한다. (시부럴...)
* 사회학자는 대략 정신이 멍해지며 판단력이 흐려져 -_- 병원의 판단에 아내를 맡긴다.
* 그래도 잘나서 입은 동동 뜬다. 이렇게:

그리고 다시 냉정(?)을 찾았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의사+간호사, 즉 병원이라는 곳이 우리 부부에게 접근한 과정이 책에서 본 내용 그대로였다. 서서히 불안을 조장하고 그리고 그 불안이 표출될 때 환자의 의심 체계를 확실하게 전문가의 권위로 해석해 주는 그 시스템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완벽하게 속은것 같다. 하지만 난 자연분만이라는 무리수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 상황에서 교과서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거 뭐가 정답인가?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내가 교과서에만 충실한 나머지 아내의 심리적 감흥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이다. 아내에게는 내가 '암묵적 권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찌 되었든 간접체험자에 불과한 내가 이렇게 무서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는 것이 매우 부끄러웠다.

* 옮긴이 주: 그걸 이제 깨달았냐, 자랑이다.


저 사회학자의 의료권력에 대한 조건반사적 불신과 한심한 자기합리화에 대해서는 위에 링크한 블로그에서 아주 자근자근 발라 버렸으니 더 할 말은 없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그래, 그래 자연분만 좋은 거 누가 몰라? (심지어 산부인과 의사도 자연분만이 좋다고 한다. 은정이가 아이를 낳은 분당 모 산부인과에서는 자기네 병원이 분당에서 가장 제왕절개 비율이 낮다고 자랑스럽게 붙여놓았다.) 하지만 그 좋은 자연분만을 할건지 안할건지 결정을 왜 애낳는 산모가 아니라 남편이 하냐구.

그리고 의사가 제왕절개를 권하면 인터넷에서라도 좀 찾아보기나 할 것이지, 9개월 동안 하던 생각이 "병원은 권력, 제왕절개는 의사의 술수" 그것밖에 없냐? 그래 놓고 아내가 40시간 진통하니까 그제서야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들어와?

애낳기 전에 임신 출산 육아에 관한 책은 한 권이라도 읽어본 거냐, 그 잘난 사회학 서적 말고?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면 전혀 안 읽어본 것 같다.)

그 때까지 난 그냥 때가 되면 '진통'이 오고 몇번 참다가 아기를 낳는 줄 알았다. 나의 엄마가, 형수가, 여러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분명 아내도 그렇게 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자연분만의 고통이 두려워 수술을 택하는 바보는 결코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
왓더뻑 오마이갓뎀


이 사회학자는 의료시스템의 권력화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지만 여성 신체의 자기결정권 같은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옆에서 아내가 40시간을 고생해야 겨우 "아 이건 마누라 뜻을 따라야겠구나" 같은 생각이 든다. 그마저도 나중에 냉정을 찾고서는 자신은 "완벽하게 속은" 것이며 (쉽게 말해 그때 제정신이 아니라서) "교과서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이용당했다고 변명한다. (도대체 변명은 누구에게 하는 거냐?!)

이럴 거면 마지막에 "아내에게는 내가 '암묵적 권력'"이었다는 반성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면피용으로 (자신이 의료권력에 굴복한 죄(!)를 변명하기 위해) 집어넣은 말인지, 아니면 그 상황에서 또다른 사회학 담론을 발견했다고 즐거워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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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가 느끼기에) 정작 가장 충격적인 반전은 기사 뒤에 있었으니.....

글쓴이가 면피용으로 마지막에 "출산이 군대보다 더 힘든 것 같다." 한마디 했다고, Daum 기사 댓글에는 "씨바 출산 따위가 군대보다 힘들다니 장난하냐!" 같은 악플의 소나기가 달린 것. 글쓴이는 그 한 마디 덕분에 졸지에 남성인권을 깔아뭉개는 페미니즘 전사가 되었다.

(도대체 이딴 유치한 vs 놀이는 누가 첨에 고안했나 모르겠다. 차라리 "파워레인저가 쎄요 히드라 한부대가 쎄요?" 가지고 싸워라.)

아아아 답이 없어 답이.

- 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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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ithele 2008/08/05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VS놀이의 답은 언제나 똑같지 'ㄱㅈ 되기' (후다닥)
    걍 정신승리의 표본 같구먼 쩝

  2. BlogIcon Atreyu 2008/08/05 1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신승리라... 탁월한 한줄요약이로군요. -.-
    근데 원래 vs 놀이의 정답은 "일본을 공격한다" 아닙니까? 벌써 유행이 지났나. -.-

  3. tangent 2008/08/0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산보다 군대보다 댓글이 더무서워. -coming out 댓글;

  4. tangent 2008/08/0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낫 동접인가; 댓글다는새 주인장님의 댓글이..

  5. BlogIcon 거북 2008/08/05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하핫. 아라에 교원평가제 답글 보다가 뿜을 뻔 했음.

  6. BlogIcon Atreyu 2008/08/05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그 멤버가 그 멤버 아니랄까봐 댓글 다섯 개에 쓰레드는 삼천포로...

    와 커밍아웃하는 탄젠트다... 전화한다더니 호수에 빠진 핸드폰은 아직도 못 고친 것이냐. 근데 요즘은 내 핸드폰이 맛이 가서 지맘대로 꺼지고 있다. 내 조만간 전화할께. -_-;;;

    거북// 교원평가제 답글이... 뭐가 어때서요. 어흑흑. -_-;;;

    * 배경설명: 아라에서 교원평가제 관련 논쟁이 붙어서 대다수가 "교원평가는 교사간 경쟁을 불러오고... 어쩌구 저쩌구... 대략 좃치안타"라고 주장하는 것에 맞서 꿋꿋이 평가제도가 왜 필수적인지 주장하다가 어느덧 주위를 둘러보니,

    아라에서 교원평가제 찬성하는 사람: 용직, 공인된 미친놈 #1, 공인된 미친놈 #2.

    젠장 그래서 "이게 뭡니까, 더 이상 글 안 쓸래요." 했더니 어디서 홀연히 혜성처럼 강림하신 안장군님 등장: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저도 교원평가 찬성합니다."

    부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7. tangent 2008/08/05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핫. 내 핸드폰은 아직도 마니아포. (입원중)
    그래도 불편한점이 하나도 없는 점이 더 마음아포; ㅋㅋ

  8. BlogIcon Atreyu 2008/08/05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하하하 이 얼마만에 보는 캔디 핸드폰이냐...;;

  9. BlogIcon 거북 2008/08/05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니아포는 노가리포 사촌인지 잠시 고민을... -_-;

  10. tangent 2008/08/05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꺄아~ 이 고향분위기; 마음이 편안해지는구뇽;

  11. BlogIcon Atreyu 2008/08/05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백하자면 "마니아포"가 마니아들이 가는 자전거포 (아님 손전화포?) 비슷한 건가 하고 30초쯤 고민했었음. (아 이 구수한 고향의 냄새~~)

  12. fithele 2008/08/05 1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라 사태는 그야말로 합종연횡이구먼
    나 같으면 김유신 장군처럼 키보드를 베고 새 기계식 키보드를... (응?)

  13. 지나가는나그네 2008/09/07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번 옳으신 말씀하시네요 잘보고 갑니다 ^^

답글, 트랙백, 비평을 위한 부분인용(?)은 누구나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혹시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오거든, 글이 없어진 게 아니라 URL이 바뀐 것일 수 있습니다. (가끔씩 permalink를 잘못 적어서 사후에 고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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